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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 Data

러닝 다이나믹스 지표로 다시 본 2026 교토마라톤 — 나는 언제부터 무너졌을까

by runanalytics 2026. 9. 6.

며칠 전 인터넷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교토마라톤 접수가 지금쯤 마감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2026년 교토마라톤을 뛰고 나서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았다.

 

대회 직후에는 다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내에게 "원수에게나 추천할 대회"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힘들었던 기억은 흐려지고 좋았던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놀라울 만큼 매끄러웠던 대회 운영,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뜨거웠던 응원. 어느새 '한 번 더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는 모든 게 괜찮았다. 목표는 3시간 10분. 초반에는 계획대로 4분 30초 안팎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아라시야마를 지날 때는 가족여행 때 일정 때문에 못 갔던 치쿠린 입구도 보였다. 나중에 가족과 다시 와서 제대로 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릴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르막이 시작됐고,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을 계속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그 생각을 반복하다가 오르막이 끝날 즈음에는 몸이 갑자기 망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3시간 10분이던 목표는 3시간 30분이 됐고, 다시 3시간 40분이 됐다. 나중에는 기록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걷지만 말자.

 

급수대에서는 거의 걷다시피 했지만, 결승선에서 기다릴 가족을 생각하면 마지막까지는 달려서 들어가고 싶었다. 3시간 43분 44초에 골인했다.

 

끝나고 보니 발톱 아래에 물집이 잡혀 있었고, 발톱 네 개가 결국 죽었다. 발바닥에도 물집이 생겨 제대로 걷기 힘들었다. 첫 마라톤을 포함해 그때까지 뛴 어떤 대회보다 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교토마라톤 기록은 열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초반의 좋았던 풍경까지 함께 잊힌 듯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대회를 다시 떠올리니 다른 것이 궁금해졌다.

 

나는 정확히 언제부터 무너지고 있었을까?

 

기억으로는 17~18km쯤이었다. 정말 그때 갑자기 무너진 걸까. 그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교토마라톤의 FIT 원자료를 다시 꺼냈다.

 

2026 교토마라톤 코스와 FIT 원자료 기반 고도 프로파일. 초반부터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이후 분석에서 확인한 주요 변화 지점을 함께 표시했다.


17~18km에서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14km 이후의 변화는 데이터에서도 바로 보였다. 14km에서 4:56/km였던 페이스가 15km에 5:07, 17km에는 5:20/km까지 떨어졌다. 같은 구간에서 Stryd 파워는 275W에서 251W로 내려갔고, 보폭은 1.094m에서 1.037m로 짧아졌다. 접지시간(Ground Contact Time, GCT)은 225.8ms에서 235.2ms로 늘었다.

 

케이던스만 182~183spm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발을 굴리는 리듬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에 나아가는 거리는 짧아지고, 땅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걸 보고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14~17km부터 무너졌구나.

 

그런데 14km 앞쪽 데이터를 보니 시작점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10km에서 계획을 바꿨다

출발 전에 생각했던 언덕 공략은 단순했다. 평지에서는 4:30/km 정도로 달리고, 오르막에서는 10초쯤 늦춘다. 대신 내리막에서 10~15초 빠르게 내려오면 전체 페이스는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문제는 실제 오르막이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는 것이다. 특히 10km 전후로는 꽤 가파른 오르막을 한동안 계속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오르막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전략을 조금 바꿨다.

 

차라리 내리막에서 더 공격적으로 가자.

 

데이터에도 그 기억이 남아 있었다. 8.8~10km는 평균 약 +2.9%의 오르막이었고, 중간중간 +5% 안팎의 경사가 반복됐다. 10km를 지나자 곧바로 -5% 안팎의 내리막이 나왔다.

 

10.1~10.3km 페이스는 4:00/km 부근까지 빨라졌다. 발을 더 빨리 굴린 것은 아니었다. 케이던스는 186spm 정도였고, 대신 보폭이 1.3m를 넘겼다. 그렇게 내려가고 나니 다시 +4%가 넘는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막에서 힘을 쓰고,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고, 다시 올라갔다. 그게 반복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구간에서 이미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10km에서 이미 무너진 것은 아니다. 11km대의 +3%가 넘는 오르막을 지나고도 다시 4:24/km까지 돌아왔다. 파워는 288W, GCT는 208ms였다.

 

아직은 언덕을 넘으면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전조는 12km쯤부터 보였다

12km를 지나면서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12.0~12.4km의 오르막을 지난 뒤 12.4~13.3km에는 평균 약 -2.5%의 내리막이 이어졌다. 몇 km 전의 나였다면 여기서 다시 속도를 냈을 것이다. 실제로 10km 직후의 더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4:00/km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리막인데도 평균 페이스는 4:28/km였다. 파워는 270W까지 내려와 있었다. 4분 28초라는 숫자만 보면 아직 목표 페이스다. 당시에 이걸 문제라고 느꼈을 리도 없다. 하지만 앞선 내리막과 나란히 놓고 보면 반응이 달라지고 있었다.

 

오르막에서 잃은 시간을 내리막에서 되찾지 못하기 시작했다.

 

지금 데이터로 보면 여기가 첫 번째 전조였다.

 

다음 오르막에서 차이는 더 분명해졌다. 13.3~14.4km의 평균 경사는 약 +1.9%였다. 앞서 지나온 오르막보다 특별히 가파른 구간은 아니다. 그런데 페이스는 5:10/km를 넘어갔다. GCT는 230ms 이상으로 늘었고 보폭은 더 짧아졌다.

 

14.4~15.2km는 오히려 내리막이다. 경사가 좋아졌으니 다시 살아나야 했다. 하지만 페이스는 4:55/km에 머물렀고 파워도 255W 정도였다.

 

이제는 언덕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10~15km 핵심 구간 비교

구간 지형·상황 페이스 파워 GCT 케이던스 보폭

구간 지형·상황 페이스 파워 GCT 케이던스 보폭
8.8~10.0km 긴 오르막 (+2.88%) 4:46/km 308W 220ms 187spm 1.122m
10.1~10.3km 공격적 내리막 (-5.00%) 4:00/km 281W 194ms 186spm 1.344m
11.7~12.0km 오르막 후 회복 (-0.60%) 4:24/km 288W 208ms 188spm 1.208m
12.4~13.3km 첫 전조 (-2.53%) 4:28/km 270W 210ms 185spm 1.207m
13.3~14.4km 악화 (+1.91%) 5:11/km 275W 233ms 182spm 1.062m
14.4~15.2km 내리막에서도 회복 실패 (-1.10%) 4:55/km 255W 224ms 183spm 1.112m

 

내 기억에서는 17~18km쯤 갑자기 몸이 망가졌다. 데이터는 조금 달랐다. 10km 전후에는 예상보다 긴 오르막 때문에 레이스 운영을 바꿨고, 12km쯤부터는 이전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전조가 보였다. 14km 전후부터는 지형이 좋아져도 원래 달리기로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갑자기 무너졌다'고 느낀 것은 그보다 조금 뒤였다.


그렇다면 언덕 때문에 무너진 걸까?

 

오르막에서 높은 출력을 반복했고, 급한 내리막 몇 곳에서는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막이 나오면 또 힘을 썼다. 그 사이 다리에 부하가 쌓였고, 몇 km 뒤부터 결과가 드러난 것은 아닐까. 오르막의 높은 출력도, 빠른 내리막의 충격도 모두 피로를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지금 데이터만으로는 어느 하나를 원인으로 정할 수 없다. 내리막에서 계속 무리한 것도 아니다. 12km 이후의 내리막에서는 오히려 이전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당시 기온이나 레이스 전 훈련 상태 같은 다른 변수도 있다.

원인을 하나로 좁힐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14km에서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앞에서 이미 피로가 쌓이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언덕을 지나도 이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는 그냥 힘들었다

 

이쯤부터는 대회 기억이 별로 없다. 강변을 달렸던 것 같다. 시가지를 지났고, 강을 몇 번 건넜다. 어떤 풍경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계속 힘들었다. 몸을 억지로 앞으로 끌고 갔다는 기억밖에 없다.

 

이번에 데이터를 다시 보면서 그때 심정이 조금 떠올랐다. 파워는 계속 낮아지고, 보폭은 짧아지고, GCT는 길어졌다. 페이스도 점점 떨어졌다. 숫자를 하나씩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때 정말 힘들었지. 데이터로 봐도 힘들었네.

42.2km 동안의 주요 러닝 지표 변화. 12~15km부터 파워와 보폭이 낮아지고 GCT가 길어지는 흐름이 나타났으며, 35~38km에서 가장 깊은 저점을 보였다. 마지막 구간에서는 다시 지표가 크게 올라왔다.


35km, 정말 바닥이었다

35~38km는 데이터에서도 가장 나빴다. 평균 페이스는 6분/km를 넘겼고 파워는 215W까지 떨어졌다. GCT는 255ms 수준까지 길어졌고 보폭은 0.9m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 바닥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뛰고 있지. 그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갔다. 가족이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달리지 못했을 것 같다.

 

결승선이 가까워지자 속도가 다시 올라왔다. 38~40km에서 페이스와 파워가 조금씩 살아났고, 40km 이후에는 5분 초반까지 돌아왔다. 마지막에는 남은 힘을 정말 전부 짜냈다.

 

마지막 약 660m는 평균 +0.7%의 오르막이었다. 그런데 페이스는 4:30/km까지 올라갔다. 파워 293W, 케이던스 190spm, GCT 213ms, 보폭 1.17m.

 

초반 4:30 / 35~38km / 마지막 660m 비교

구간 페이스 심박 파워 케이던스 GCT 보폭
초반 5~10km 4:31/km 175bpm 299W 189spm 211ms 1.171m
35~38km 6:08/km 157bpm 215W 182spm 255ms 0.896m
마지막 약 660m 4:30/km 168bpm 293W 190spm 213ms 1.171m

 

이 숫자가 조금 놀라웠다.

 

초반 5~10km를 4:31/km로 달릴 때 파워 299W, 케이던스 189spm, GCT 211ms, 보폭 1.17m였다. 42km를 달리고 난 뒤의 마지막 몇백 미터에서 케이던스, GCT, 보폭이 그때와 거의 같았다.

 

그렇다고 35km에서 실제로 힘이 남아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기억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 가까웠다. 몸이 갑자기 회복된 것도 아니다. 결승선에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짜냈을 뿐이다. 마지막 몇백 미터의 숫자를 보고 있으니 그때 심정이 다시 떠올랐다.


피로는 페이스가 떨어질 때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 이 데이터를 열었을 때 알고 싶었던 것은 단순했다. 나는 언제 무너졌을까.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니 처음과는 조금 다른 질문이 남았다. 페이스가 크게 떨어진 순간은 찾기 쉽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갑자기 모든 피로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레이스에서는 그보다 몇 km 전부터 변화가 보였다. 처음에는 언덕을 넘어도 다시 돌아왔다. 12km쯤부터는 내리막에서도 이전처럼 회복하지 못했고, 조금 뒤에는 경사가 좋아져도 파워와 보폭이 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망가졌다고 느끼기 몇 km 전의 일이었다.

 

이번에는 결국 페이스까지 무너졌기 때문에, 나중에 데이터를 봐도 그 과정을 되짚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페이스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겉으로는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어도, 그 전에 이미 다른 신호가 나타날 수 있을까? 다음에 다른 러닝 데이터로 다시 확인해볼 생각이다.

 

데이터를 다시 보며 그때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던 오르막, 계속 낮아지던 목표, 몸을 억지로 끌고 갔던 후반, 그리고 결승선에서 기다리던 가족까지. 이렇게 다시 떠올려봐도 "원수에게 추천할 대회"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또 가고 싶다.